글로벌 기후의제를 주도하는 유럽연합(EU)이 환경 규제 완화에 이어 2040 기후 목표 수정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정책 ‘후퇴’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1분기 내로 발표 예정이었던 204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 시기를 여름 이전으로 연기하고, 회원국과 의회 동의를 얻기 위해 2040 기후 목표를 재수립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EU가 2040 기후 목표 재수립을 염두하고 있는 배경은 EU 의장국인 폴란드의 논의 연기 요청과 더불어 일부 회원국 및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이 ‘산업계 부담’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EU가 2040 기후 목표를 재수립할 시 국내 산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경제 영향 동시에 상존하는 양면성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EU의 강력한 기후 목표는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증가시켜 파리협정 당사국들이 보다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EU가 기후 목표를 하향 조정할 경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 같은 규제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단기적으로는 국내 탄소 다배출업종들의 탄소 비용 부담을 일정 부분 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져 이차전지와 전기차 등 관련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EU 환경규제 완화로 관련 산업이 위축할 것이란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은 지속 추진될 것으로 보여 마냥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EU의 저성장 기조로 인해 친환경 정책 ‘후퇴’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봤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적 경쟁력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웠던 EU가 경제적 부담은 물론, 그린래시(녹색정책에 대한 반발심) 및 트럼프발 관세 전쟁까지 본격화되면서 기후의제를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EU는 지난 2월 기업 부담을 경감을 골자로 한 옴니버스 단순화 패키지(Omnibus Simplification Package)를 발표한 바 있다. 옴니버스 패키지에는 실사 대상 기업 축소 및 기업의 의무 실사 주기 연장 등 기업 부담 축소에 대한 방안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최승신 C2S 대표는 “경제 성장에 문제가 생긴 유럽의 무게추가 기후 목표 강화를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며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유럽에 경기침체 시그널이 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여론이 원하는 건 기후가 아닌 당장 먹고사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유럽의회는 국방비 증가 등으로 그린딜에 예산을 쓸 여유가 없어 기후 목표 약화 쪽으로 방향성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내 산업계가 기후변화 대응 약화 흐름의 시기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영도 한에스엠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은 “기후변화 대응은 시간이 늦어질 뿐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세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기후변화 및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장기 과제로 기업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규제 완화 등의 이슈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 기업의 미래 비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