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氷河)가 빠르게 녹으며 북극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 지구의 탄소 저장고라고 불리는 바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기후변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학연구소 데이비드 닐슨 박사 연구진은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2100년에는 북극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지금보다 최대 14%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했다.
북극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3분의 1을 흡수할 정도로 기후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는 온도가 낮을수록 액체에 잘 녹는다. 북극 바다는 겨울철 평균 수온이 섭씨 영하 40도에 이른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녹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북극은 최근 생태계가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 여름철 기온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0년 이후 가장 높은 섭씨 6.4도를 기록했다. 동시에 빙하도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바다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극은 다른 지역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4배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컴퓨터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모방한 ‘막스플랑크 지구시스템 모델(MPI-ESM)’로 시뮬레이션(가상실험)해 북극의 환경 변화를 분석했다. 탄소 배출량의 변화에 따라 지구 평균 기온의 변화, 탄소의 순환, 북극 빙하의 해빙, 영구동토층 침식 같은 다양한 요소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며 그 속에 있던 영구동토층의 침식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닐슨 연구원은 “영구동토층의 침식은 바다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전 시뮬레이션에서는 영구동토층에 대한 영향이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구동토층은 두꺼운 빙하 아래에 있는 지반으로 오랜 기간 얼어 영양물질을 언 채로 간직했다. 빙하가 녹자 영구동토층의 영양물질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박테리아가 대량 증식한다. 그러면 바다가 더 산성 상태가 된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아 탄산이 되는 만큼 바다의 산성화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줄인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중탄산이온과 탄산이온, 수소이온(H+)이 생긴다. 이미 산성화가 진행된 바닷물에는 수소이온이 충분히 많이 녹아 있어 추가로 수소이온이 녹는 것을 방해한다. 바닷물은 염기성에 가까울수록 이산화탄소가 더 잘 녹는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빠르게 감축해 2070년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은 탄소중립이 실현돼도 이런 변화를 막기 어렵다고 봤다.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이미 일어난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영구동토층 침식이 2100년까지 2~3배 늘어나면 북극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연간 최대 1억3200만t 감소한다는 것이다. 현재 북극 바다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최대 14%에 해당하는 양이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늦어질수록 이산화탄소 흡수량 감소 폭이 더 커지는 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와 비슷하게 유지되는 시나리오에서는 북극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의 19%가 감소할 전망이다.
닐슨 박사는 “우리가 예측한 기후변화 속도보다 실제로 더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영구동토층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더 면밀히 분석해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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